가야는 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562년까지 약 500년을 낙동강 하류에 자리잡았다. 가라 또는 가락이라고도 불린다. 수백 개의 부락이 연합해 만들어진 부족국가로 가야의 탄생은 하늘로부터 시작됐으며 제사장 나라, 이서국을 계승한 것이다. 설화의 골자는 하늘의 신과 가야산신이 만나 아들을 뒀고 두 아들이 가야국을 이루는 시조가 됐다는 것이다.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진주 또는 함창의 고령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고성의 소가야를 합쳐 '6가야'라고도 했다. 철기문화를 풍미해왔으나 562년 신라에 복속됐다. 가야산 곳곳에 가야국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가야국의 시조인 이진아시 왕과 김수로 왕의 일곱 아들이 생불이 됐다는 곳, 가야 부족국 시대부터 쌓아올려졌다는 가야산 산성 등이 그 예다. 가야산의 정상은 소머리를 닮은 우두봉이지만 최고봉은 정상보다 3미터 높은 칠불봉(1443m)이다. 우두봉과 칠불봉의 거리는 10여 분이지만 각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서로 다르다. 칠불봉에서는 각양각색의 바위들을, 우두봉에서는 푸르름을 볼 수 있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제자리에 있을 가야산, 먼 훗날에도 자신이 간직한 자연과 가야의 이야기를 덤덤히 들려주고 있지 않을까??
출처: 역사문화의 길라잡이 글마루

글마루.. 가야산 우두봉

글마루.. 만물상

글마루..가야산 산성

글마루..우두봉에서 바라본 칠불봉

글마루..가야금관

글마루..가야 차륜식토기